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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기억이란건 간혹 아주 선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많이 포장되어 있기도 한데
그건 아마도 그시절의 느낌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자라나면서 변질된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시누이가 빵빵하게 많고 층층시하 시집식구들이 많던 집의 둘째 며느리였던 울 엄마는
내기억이 있던 언제부턴가 시댁에서 웃어도 그게 왠지 안쓰러워 보이는 웃음이었다고 기억된다.

고모들이 다들 안방에서 웃으면서 떠들고 놀때, 큰숙모와 함께 엄마는 늘 부엌에 계셨다.
시집온건지 부엌데기로 들어온건지 모르게 그렇게 매번 손에 물 묻혀야 하는 일은 며느리들의 몫이였다.

고모들도 시댁가서 고생을 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울 엄마도 친정가면 귀하디 귀한 금지옥엽 외동딸이었는데 말이다.

미장원가서 머리하고 곱게 화장하고 한복을 입은 고모들에 비해 늘입던 옷에 앞치마만 두르고 부침게를 부치고
갖은 음식을 하느라 온몸에서 기름냄새가 떠나지 않았던 엄마.

그런 이유들로 인해 할머니댁에서 지내는 설날이 그닥 재미있지 않았던거 같다.
고종사촌들도 그래서인지 그냥 덤덤하게 대했고.
덕분에 아주 까탈스러운 애취급을 받기 딱 좋았지 않았나 싶고...

새뱃돈은 의례 신학기 용품을 사느라 엄마에게 고스란히 드려야 했지만
그래도 특별히 조금은 남겨주셨다. 그럼 그걸로 설날 다음날 부터는 만화책을 빌려다가 잔뜩 쌓아놓고
구석진 방에서 그것만 보는게 낙이였다.
한창을 정신 없이 만화를 보고 있으면 엄마가 빼꼼히 문을 열고 손짓을 하며 부엌으로 부르실때가 있다.
그럼 갓 만든 따끈한 잡채를 작은접시에 담아서 얼릉 부엌에서 먹고 나가라고 하시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잘하는 한국음식중 하나가 잡채일지도 모른다.
다른건 몰라도 잡채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맛있게 먹어봤기 때문에, 그맛을 만들어 낼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그때부터 오랫동안 결혼은 시집살이라는 공식을 생각하고 살았더랬다.
외국으로 별 미련없이 떠나올수 있었던 것도 호기심이나 공부에 대한 욕구만큼이나
한국사회에 대한 모종의 원망이나 짜증이 있기도 했는데 그게 결국 내 가족때문이었기도 했다.

이젠 할머니도 안계시고 고모나 사촌언니들도 나이가 먹어 중년이상이 된 지금.
그저 설명절은 친정에 전화나 한번 더 걸어서 떡국드셨나고 물어보는 일외에는 더이상 큰 미련이 안생기는 날이 되었다.

트윗이나 미디어에서도 명절 스트레스를 너도나도 부르짖는다.
세상산천이 몇번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그 명절을 기해 생기는 갈등은 여전한가 보다.

여러 세대의 가족친지가 모여 즐겁고 의미있는 따스한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이면엔 늘 그시기엔 스트레스 받고,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명절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인내의 시간이 되지는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친정과 먼 외국에 사는 딸내미니 전화를 걸면 함께 보내지 못해 아쉽다고 하신다.
아마 장담컨데 한국에서 시집가 살고 있었으면 나도 열에 아홉은 명절 스트레스로 찌푸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결국 이렇게 멀리서 사는게 내겐 좋은 선택이었다고 그저 자조해본다.
월요일은 우리는 공휴일이 아니다. 출근해서 일한다.
내게 새해는 이미 삼주전에 시작되었다.
그러니 오늘도 굿나잇.



Posted by 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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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22 10:37

    그래도 1월1일에 인사를놓친 분들에게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긴해요. ^^

    저희 엄니도 층층 시누 다섯의 외며느리이십니다. 제사는 일년에 설 추석 합쳐 열 한번,
    학교다닐 때 주점에서 안주로 모듬전 같은것 시키는 애들을 절대 이해 못했다죠. ㅋ
    어째서 명절에는 늘 시끄러운지 모르겠지만,
    저도 여기 있어서 좋습니다. ㅎ

    딸들이 제사 없는 집에 시집가는게 소원이었던 엄니 원도 이뤄드리고 말이죠 ㅋ

    • 2012/01/22 11:18

      그많은 제사상을 차리시느라 힘드셨겠네요.
      설명절 전통이고 하는것들의 대다수가 여자들의 수고가 무슨 희생처럼 깔려야 하는걸 전제로 하는거라. 특히 며느리들의 수고가 강요되는거라 그냥 그러네요.
      주말이라 늦잠자고 일어나서 빈둥거리는 중입니다.
      몇일째 음식장보랴 음식준비하랴 고생하던 엄마들은 정말 명절이 지겨웠을거에요.
      저도 이렇게 나름 시집살이 안하는 집으로 시집와서 제사상 안차리는것 만으로도 큰 복인거 같습니다. 전통지키는건 역시 제몫은 아니었나 봐요.ㅎㅎㅎ

  2. 2012/01/25 00:43

    농부님 만난것 중에 좋은것................... 하나는.
    시댁에 제사가 없다는 것.
    양쪽 집 다 기독교여서, 이거 하나는 정말 좋더라구요.

    꼬장님.
    제가 정말, 잡채를 잘 하거든요.
    진짜, 진짜루요.

    아, 진짜 해드리고 싶은데,
    해드릴 방법이 없네요. ㅠㅠ

    어제 밤은 연휴 후유증으로 담연이와 함께 쓰러졌네요.
    새벽에 깨서 봤는데...
    ㅎㅎ
    나중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 2012/01/25 01:01

      역설이지만 어렸을때는 외가댁에서 지내는 제사를 참 좋아했어요. 음식들도 맛나고 뭐든 굉장히 단아한 느낌이나서.. 그나마 외증조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제사도 끝이나버려서 아쉽기도 했어요.

      잡채는 우리 언제 같이 해먹을날이 오기를 기대할께요.

      연휴로 이동하는데만 시간이 많이 걸려서 피곤했을거에요. 푹 쉬세요.^^

  3. 2012/01/25 00:52

    저도 양쪽 집안 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지라....
    시집 잘 간거죠. 제사의 ㅈ도 모르는 집에서 자라다가 갑자기 하라고 하면 그것도 못할 일인데. ㅎㅎ
    나름 명절음식 한다고는 해도 제사지내는 집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리고 다들 같이 맛난거 먹는다는 생각에 그리 힘들지도 않구요.

    이번 설은
    우리가 온다면 항상 좋아라 와주시는 큰시누네도 결석,
    평소에도 좀 보기는 힘들지만 이번에 아이들 데리고 외국으로 영어연수 떠난 작은 시누네도 결석하는 바람에
    좀 썰렁한 명절이었어요.
    동서는 친정이 아주 가까운지라 (바로 옆마을 ㅎㅎㅎ) 설날 점심 먹고 빨리 친정 가라고 내쫓아 버리고
    시어머니와 둘이서 오손도손.... 뭐 해먹을까 궁리하며 하루 보냈어요.

    요즘은 명절이라고 하면
    점점 더 연세들어가시는 부모님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해서
    그냥 마음이 쨘하고 그래요.
    만약에 제가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며느리였다면 그런 것도 못느끼겠지만
    그냥 부쩍 나이들어 보이시는 부모님의 모습에 속상하기만 하죠.

    • 2012/01/25 01:04

      간만에 뵙네요. 늦었지만 새해 건강하시고 복많이 받으세요.^^

      제사 안지내고 간략하게 명절을 보내시는 분들이 늘어나시더군요.
      사실 음식준비자체는 그닥 힘든게 아닐수도 있는데
      장거리를 힘들게 이동하고 또 자주 안보던 가족들이 간만에 모여서 반가운 반면 또 서로 어울리면서 맞춰줘야 하는것들이 의외로 힘든일이 아닐까 싶어요.

      부모님들의 연세가 깊어지실수록 명절엔 늘 한켠이 죄송함이 들지요. 그건 어쩔수 없네요.

  4. 2012/01/25 08:53

    저도 잡채를 참 좋아해서 왠만큼 맛은 내지만... 꼬장님의 잡채, 꼭 먹어보고 싶습니다. ㅎㅎ
    제사를 본적도 없는 저는 당연히 제사음식도 먹어본적이 없어요.
    그러고 보면 울 엄니는 나름 편하게 시집살이를 하신 편이것 같은데...
    제가 혼자 자라서 그런지 전 식구가 많은 곳으로 시집가고 싶었는데. ㅋㅋ

    • 2012/01/25 23:50

      이거 완전히 제가 잡채 깔대기를 들이덴 느낌입니다.ㅎㅎㅎ
      제사는 어렸을때 외증조모께서 지내시던걸 보았더랬어요.
      그래서 그땐 철없이 좋아하기만 했죠. 할머니가 유과 튀겨주시는거 강정만들어서 쥐어주곤 하셨거든요.

      이제라도 대가족댁 며느님으로 들어가셔도 될거같은데요? 뭘 망설이십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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